평생 모아 둔 내 ‘하고 싶은 것 리스트’ 펼쳐보다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아낌없이 소비해본 기록과 소감을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나는 아마 가장 먼저 통장 잔고부터 확인할 것 같다. 평생 아껴 쓰고, 혹시 모를 미래에 대비하며 모아 둔 돈. 하지만 오늘이 끝이라면 더 이상 미래라는 단어는 의미가 없어지니까. 그 순간, 그 돈은 단순히 숫자일 뿐이란 사실이 크게 다가올 것 같다.
나는 늘 머릿속 어딘가에 ‘언젠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두고 살았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오랫동안 탐내던 명품 가방 하나 사보기, 혹은 평생 안 해본 럭셔리 마사지나 호텔 스파 이용하기.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나중에”라는 단어로 이 리스트를 덮어두게 했다. 돈이 아까웠고,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 나는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둔 버킷리스트를 펼쳤다. 보고 싶던 뮤지컬 VIP 좌석 예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예약, 그리고 솔직히 한 번쯤 사고 싶었던 고급 시계. 사실 평소에는 내 월급으로는 언감생심 넘볼 수 없는 것들이었지만,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계산은 무의미해졌다.
내 손끝은 망설임 없이 결제를 눌렀다. 한 번쯤 이런 호사를 누려보지 못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설령 하루뿐일지라도, 나는 나에게 가장 호화로운 선물을 주고 싶었다. 어쩌면 돈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그동안 내 안에 쌓여 있던 갈망과 욕망을 해방시키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날의 소비, 그 찰나의 행복과 벅참
하루 동안 정말로 돈을 아낌없이 써본 경험은 내 삶에서 처음이었다. 평소 같으면 결코 들어서지 못했을 비싼 레스토랑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약간 주눅이 들면서도 묘한 설렘이 느껴졌다. 직원들은 친절했고, 와인잔에 담긴 붉은빛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메뉴판을 펼쳐보니 눈이 동그래졌다. 언제나 “가격 오른쪽부터 먼저 본다”는 내 습관이 발동했지만, 오늘만큼은 과감히 그 습관을 지우기로 했다. 제일 비싼 스테이크와 해산물 코스요리를 주문했다. 요리가 하나씩 나올 때마다, 눈도 입도 함께 황홀해졌다. “내가 이런 음식을 먹다니.”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평소에는 엄두도 못 냈던 명품 매장으로 향했다. 번쩍이는 쇼윈도 너머의 가방들은 늘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오늘은 달랐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가죽 가방을 어깨에 메본 순간, 나 자신이 조금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사실 그 가방이 나를 빛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오늘은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내 자신감이 빛났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후 호텔 스파로 향했다. 평소라면 ‘저 돈이면 다른 데 쓰겠다’고 생각했겠지만, 오늘은 그저 내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 따뜻한 물속에서 몸을 담그며, “이렇게 편안하고 호사스러운 기분이 존재하는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다. 마사지를 받으며 눈을 감았을 때, 울컥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나 자신을 정말 귀하게 대접해본 것에 대한 벅참이었다.
마지막처럼 돈을 쓰며 느낀 건, 결국 돈이 주는 행복은 그 물건 그 자체보다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다는 확신”이었다. 그 몇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이었다.
아낌없이 써본 뒤에 찾아온 생각들
그날 밤, 호텔방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돈을 쓰고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분명 엄청난 금액을 하루 만에 써버렸는데도, 후회는커녕 마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오히려 ‘왜 그동안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물론 현실적으로 매일 이렇게 살 수는 없다. 통장 잔고가 허락하지 않을뿐더러, 사람은 늘 미래를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이번 경험이 내게 준 가장 큰 깨달음은 “돈은 결국 나를 위해 쓰라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나는 돈을 모으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던 적이 많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길까, 미래가 불안하니까. 물론 그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아끼고만 살다 보면, 정작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마지막처럼 돈을 써본 하루는 내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나는 처음으로 “나도 이런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단순히 소비의 만족을 넘어서, “나도 내가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돈은 종종 죄책감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그날만큼은 순수한 기쁨을 주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지금, 나는 조금 더 달라졌다. 무턱대고 소비를 늘리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데 돈을 쓰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때로는 맛있는 식사 한 끼, 혹은 작은 선물 하나에도 마음껏 돈을 쓸 수 있는 여유. 그것이야말로 돈이 주는 가장 값진 쓰임이 아닐까.
마지막처럼 돈을 써본 하루는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었지만, 그 하루가 내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조금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고, 나를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었구나.”